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84 썬더제트 (문단 편집) === F-84A(P-84A) === 1944년 미육군항공대([[미합중국 공군|미공군]]의 전신)는 앨리슨사의 J35 [[터보제트]] 엔진을 이용하여 최대속도 600mph(966km/h)이상으로 비행 가능한 주간 전투기 개발 계획을 공고하였다. [[리퍼블릭]]은 이 사업의 계약업체로 선정되어 25대의 시제기 및 운용시험용 전투기와 75대의 실전 투입용 전투기를 생산하기로 계약했으며 일단 3대의 [[프로토타입|시제기]] 를 제작 하기 시작했다. 이 신형 전투기는 P-84로 명명되었으며 여러면에서 [[P-80 슈팅스타]]를 압도할 것으로 분석되었다. P-84의 특징과도 같은 두꺼운 직선익은 본래 [[P-47]]의 제트화 계획의 일환으로 나온 개념이었다. 당시 P-47 제트화 계획에서는 지름이 굵은 원심 압축기식 터보제트 엔진 대신 지름이 가는 축류 압축식 터보제트 엔진을 사용하여 동체직경을 가늘게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동체가 가늘어져 갈 곳 없는 연료는 두꺼운 날개에 몰아넣으려 했는데, 사실 당시 제트 전투기들은 동체 앞부분부터 이어져 동체 뒤까지 모두 빈 관형태(공기흡입구->제트엔진->배기구)였기 때문에 동체에 연료를 넣을 곳이 별로 없기도 했다. 그런데 NACA([[NASA]]의 전신)이 [[풍동]] 실험을 해보니 P-84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일단 세로방향으로 불안정한데다가 꼬리날개 외피(skin) 구조물은 고속에서 구조적인 우그러짐 현상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당시 제트 엔진의 추력은 약한 편인데, 설계를 할 수록 꾸역꾸역 전투기 무게가 늘어나서 잘못하면 엔진에 비해 너무 무거운 전투기가 될 위험이 있었다. 미 육군항공대는 예상 임무 중량(기체자중 + 평균 임무시 연료 및 무장 중량)을 6톤 급으로 제한했다. 리퍼블릭은 설계를 진행하여 어떻게든 문제점들을 수정하였고 계획된 3대의 시제기중 마지막 시제기에 설계 변경 결과를 반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XP-84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탑재하기로 한 엔진이 더 출력이 향상된 J35-GE-15(4천 파운드급)이 개발되었고 이 역시 3번째 시제기에 장착되었다(시제기 1, 2호기는 3천7백 파운드급인 J35-GE-7엔진 사용). 3대의 시제기는 XP-84A로 명명되었다. XP-84A는 1946년 2월 28일 최초로 뮤록(Muroc) 미 육군 비행장[* 현재 에드워드 공군기지로 이름이 바뀐 곳. 그 유명한 [[51구역]]에 있는 곳이다.]에서 첫 비행에 성공했다. 본래는 첫 비행이 더 앞당겨질 수 있었으나 리퍼블릭은 시제기 1, 2호에도 추력이 향상된 J35-GE-15를 탑재하여 첫 비행단계 부터 신형 엔진이 비행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각론 끝에 시제기 1, 2호는 더 저추력인 J35-GE-7을 사용하여 비행하기로 하면서 첫 비행이 이루어 진 것이다(그러나 이 리퍼블릭의 주장은 훗날 설득력 있는 이야기인 것으로 결론난다). 이후 운용성 시험 목적으로 6정의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탑재(기수 4정, 주익 2정)된 YP-84A이 15대 생산되었으며, 이 시점에 F-84의 상징과도 같은 226갤런(856리터)들이 날개 끝 연료탱크가 추가되었다. 다만 사업이 급하게 진행되느라 이 연료탱크가 기체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테스트도 해보지 않았던 통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 문제는 F-84D 버전에 가서야 확인이 되어 연료탱크에 작은 날개를 다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P-84 개발 계획중 기술적 문제와 개발 지연이 계속 되자 미육군항공대는 리퍼블릭에게 이런식으로 하면 사업을 취소해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사실 리퍼블릭도 약간은 항의할 구석이 있었다. XP-84A 1, 2호기에와 시제기3호기의 엔진이 달라지면서 기체의 성능과 특성이 변하였는데 리퍼블릭 말대로 1호기 부터 본래 계획된 엔진을 달았다면 기술적 위험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1, 2호기에 엔진이 다른 것이 달린 것은 신형 엔진이 늦게 개발된 탓이었으므로 리퍼블릭 책임도 아니었다.] 또 미 육군이 속도 기록을 세워야 한다고 시험비행해야 할 2호기를 가지고 속도 기록 세우는데 열중하면서 시험 데이터 수집이 늦어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거나 NACA가 지적한 문제 수정한다고 시제기 3호기의 생산이 지연되고 그로 인해 지상 하중 시험등도 지연되면서 전체 사업 일정이 지연된 것은 리퍼블릭 책임이 컸으므로 리퍼블릭도 할 말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